이틀 동안 느꼈던 감정은 꼭 남겨놓아야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오늘 오랜만 (약 두달)만에 친구 집에 놀러갔다. 나도 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계속 바빴고 로스쿨에 다니는 친구는 훨씬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속이 계속 미뤄지고 미뤄지다 이번 주 주말이 아니면 안되겠다 싶어서 일요일 저녁에 시간이 나자마자 신촌으로 달려갔다.
나에게 창조욕구, 프로그램, 그림과 같은 무언가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그 친구에게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표현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각자의 욕구에 해당하는 행동을 할 때 가장 신나보이고 몰입한다.
그래서 그런가 친구와 내가 만나면 코인노래방을 많이 간다.
코인 노래방에서 나는 듣기 좋은 목소리와 여러가지 기교를 통해 삐쭉삐쭉하지만 멋들어진 노래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친구는 잔잔하거나 격정적인 노래를 담백하게 불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같이 있으면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떠드는데, 보통은 내가 여러가지 새로운 주제로 바꿔가면 친구는 그 주제에 대해 생각했던 것들을 풀어놓는다.
늘 그러듯이 대화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친구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가 다른 친구에게 전화해서 회사 생활로 힘들어 하고 있는 그 친구를 위로해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잠깐의 이야기를 듣고 친구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통찰력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자신의 예전 상황, 그리고 독서를 통해 얻은 경험을 통해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라고 제시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나까지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핵심만을 간추려서 이해하는 습관이 있는데, 친구는 상대방이 말 속에 숨겨놓은 포인트들까지 놓치지 않고 챙겨주었다.
과제 때문에 몇시간 잠을 못잔 상황이고, 내가 집에 돌아가고도 바로 과제를 하다 또 쪽잠을 잘 정도로 여유가 없는 상황일텐데, 이렇게 여유롭고 능숙하게 누군가를 위로해줄 수 있다는게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그 친구가 말하는 방식을 유심하게 관찰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저런 지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내가 대화하는 방식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mbti를 완전히 신뢰하진 않지만 따져보자면 나는 T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누군가 "내가 정말 많이 아파서 공부를 많이 못했는데 이번에 반에서 3등했어" 라는 말을 하면, 나는 "와 안아팠으면 1등했겠네! 수고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를 포함한 누군가는 이런 대답을 좋아해줄 수도 있지만, mbti 검사를 해보면 한명도 빠짐없이 F가 나오는 내 친구들은 그다지 내 말에 위로받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모습은 나도 알고 있기 때문에 노력 중이다.
내가 놀랐던 부분은 그 친구의 통찰력과 지혜였다. 많이 알고 있는 만큼 보일 것이고 많이 경험해본 만큼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또 이를 통해서 그 친구가 평소에 저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300만원으로 독일에서 1년간 살아남기'를 해봤고 오랫동안 방황하다 꿈을 찾은 나도 나름대로 경험이 참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이건 나와 비슷한 분야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만날 수 있는 책에서 얻은 통찰력과 경험은 정말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친구와 마찬가지로 나도 쉽게 힘들어지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친구들을 위로해주고 보듬어주는 역할을 내가 하게 될 것 같은데, 친구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책을 좀 읽으면서 마음의 스펙트럼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쉴 수 있을 때 잘 쉬자 (0) | 2022.02.10 |
---|---|
진짜 오랜만에 좋은 아침 (0) | 2022.02.04 |
첫번째 인디 앱 출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0) | 2021.12.27 |
머리속정리 (0) | 2021.12.10 |
3년 동안의 과외가 마무리되어 간다. (0) | 2021.09.21 |
일요일 오후 카페에서 코드 보다 눈아파서 쓰는 글 (0) | 2021.07.25 |
7월 7일 (0) | 2021.07.07 |
공정의 제도화에 대해서 (0) | 2021.07.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