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중3 때부터 고3까지 수학을 가르쳤던 학생이 한 명있다.
내가 중간에 독일을 1년 다녀오는 바람에 고1 때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만 놓고 보면 4년 넘게 그 친구와 함께했다니 놀랍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쪼그만할 때 만났는데 어느새 훌쩍 커버렸구나 싶다.
그 친구가 크는 동안 나도 같이 커서 가르치는 내내 나에게는 조그만한 학생이었어서 이렇게 듬직하게 컸다는 건 방금 깨달았네..ㅎㅎ
참 똑똑하고 정이 많은 친구이고 그래서 그 친구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고 부족한 실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원래 과외 시간만 과외를 한적은 거의 없었고, 일주일에 두세번은 더 가서 옆에 두고 공부시켰다.
과외비를 더 받은적은 없다. 과외비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내가 그 친구의 선생님이라는 책임감이 컸던 것 같다.
혼자 공부를 하라고 하면 잘 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숙제를 내주고도 내가 불안해서 그 친구를 찾아가서 옆에 두고 공부를 시켰다.
나도 저 때 얼마나 공부하기 싫었는지 잘 알고 있고, 막상 집에 가면 숙제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집 근처 카페에서 함께 공부 했기 때문에 둘이 먹은 커피를 다 합치면 천잔쯤 되지 않을까? 충분히 그렇게 될것이다..ㅎㅎ
나는 선생님은 알려줄게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 수학은 본인이 풀어보면서 본인이 이해해야 실력이 좋아지는 것이고, 선생님은 옆에서 학생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도록 부족한 개념을 잡아주고, 문제 난이도를 조절해주고, 공부하는 자세를 잡아주고, 공부해 나갈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강의를 하는 역할보다 시간과 노력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했어야 했지 않나 싶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내 아이폰에 자신의 이름을 "잘생긴 OO이" 라고 저장한 것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커다란 반항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고집이 있어보였고 딱 처음 보았을 때는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중3 때는 공부 습관을 잡아주기 위해서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처음에 그 친구는 문제를 풀 때 흔히 말하는 '기도 메타'를 사용하는 친구였다. 풀이식을 잘 쓰지 않으면서 문제와 눈싸움을 하는 친구였고, 머릿속으로 암산되지 않는 것들만 연습장에 끄적 끄적 적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연습장이 꼭 낙서장 같았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푸는 풀이식 하나 하나를 보면서, 연습장을 차례대로 사용하는 벙법과 글씨 연습부터 시켰었다.
그 당시 내가 신대방역 근처의 남도학숙에 살았었기 때문에 틈만 나면 그 친구를 신대방 삼거리 근처 카페로 불러서 공부를 시켰다. 지금 생각하면 먼 길이었을 텐데 오라면 와서 공부하고 가던게 참 고맙다.
운이 좋지 않았던 건, 그 친구가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려고 할 때, 내가 독일로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어서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나도 그 당시 내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간절한 상황이었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고, 결국 내 주변에 과외를 잘한다고 유명한 친구에게 그 친구를 부탁하고 독일로 떠났다.
독일에 다녀와서 몇달 안있어서 다시 그 친구와 과외를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하루에 한시간이라도 수학 공부를 하는게 쉽지 않다. 머리가 좋은 친구들은 일주일에 필받는 날 서너시간 공부하고 주변 친구들 보다 살짝 높거나 낮은 등수를 채간다. 그 친구가 그런 상황이었다.
고2가 되니 중3 때보다 가르치기 쉽지 않았다. 고집도 예전보다 많이 세졌고 머리도 커서 본인이 하기 싫은건 잘 안하려고 했다.
그리고 중 3때는 시험기간이 되면 전과목을 봐줄 수 있었는데, 고2가 되니 수학 하나 봐주는 것도 벅찼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정말 시간을 많이 써서 옆에서 앉혀놓고 공부를 했었다. 그 때 그 친구 집 아래에 커피나무 카페가 있었는데, 내려오라고 전화하면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내려오던 게 생각난다. 그래도 막상 내려오면 열심히 했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서로 시간도 많았고, 순탄하게 공부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교과서와 학교에서 나눠준 수학 프린트물을 몇번씩 풀어보면서 내신 준비를 했을 때는 꽤 점수도 잘 나왔었다. 정말 이대로면 쑥쑥 늘겠구나 하는 확신도 들었다.
고3이 되자 정말 쉽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내신을 포기하기로 하고 정시로 가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힘들어졌다. 중간, 기말고사를 준비했을 때는 시험에 대한 압박감으로라도 공부를 했었는데, 아직 한참 남은 수능 공부을 바라보면서 공부 시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도 iOS 프로젝트를 하게 된 순간부터는 옴짝달싹 하기가 힘들어졌다. 예전처럼 그 친구 옆에 붙어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나지 않았고, 팀원들과 붙어서 작업해야 하는 시간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많은 시간을 쏟지 못했다.
집에 있으면 공부를 하지 않았고, 그런다고 내가 예전처럼 일주일에 4번 5번씩을 옆에 가서 같이 공부할 수가 없으니 독서실을 등록해서 거기서 숙제를 할 것을 제안했고, 독서실에서는 숙제를 곧잘 해왔다.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나갔다.
하지만 그 친구가 허리디스크가 터지면서 시련이 왔다. 하필 6월 평가원 모의고사 전이었고, 디스크 때문에 몇 주 동안은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었다. 당연히 6월 평가원을 잘 볼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9월 모의고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제 두달 정도 남았는데, 머리가 정말 좋은 친구인만큼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수능 공부할 때는 9월까지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었다. 하지만 9월 이후에 더 열심히 했고 수능을 가장 잘 봤었다.
그 친구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능까지 50일도 안남은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제 많이 남지 않았지만, 끝까지 믿고 응원해주려고 한다.
'하루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 오랜만에 좋은 아침 (0) | 2022.02.04 |
---|---|
첫번째 인디 앱 출시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0) | 2021.12.27 |
머리속정리 (0) | 2021.12.10 |
독서에 대해 (0) | 2021.10.25 |
일요일 오후 카페에서 코드 보다 눈아파서 쓰는 글 (0) | 2021.07.25 |
7월 7일 (0) | 2021.07.07 |
공정의 제도화에 대해서 (0) | 2021.07.07 |
답답함 (0) | 2021.07.02 |